소멸 위기의 언어들 살아있는 유산을 지키는 전 세계의 노력
소멸 위기의 언어들 살아있는 유산을 지키는 전 세계의 노력
1. 사라지는 언어들, 세계는 얼마나 위험한가?
현재 전 세계에는 약 7,00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이 21세기 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이러한 언어들을 보호하고자 ‘소멸 위기의 언어(Endangered Languages)’ 목록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언어 사용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가?
- 해당 언어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가?
예를 들어, 아카어(Aka), 리브어(Livonian), 아이누어(Ainu) 같은 언어는 사용자 수가 수십 명 이하에 불과하며, 대부분 고령자들만이 사용합니다. 이들은 ‘극심한 소멸 위기(Critically Endangered)’에 해당되며, 언어와 함께 수천 년의 구전 전통, 신화, 공동체의 지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2.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문화와 정체성의 보고
언어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는 곧 문화 그 자체이며, 집단의 기억, 세계관, 지식 체계, 그리고 사회적 가치가 담겨 있는 총체적 표현 방식입니다. 각각의 언어는 그 민족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 지역의 소수 부족 언어들은 날씨의 미세한 변화, 식물의 성장 주기, 치유용 약초의 정확한 구분법까지 언어 안에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존 지식을 넘어, 해당 공동체가 수천 년 동안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자산입니다. 이 언어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와 함께 축적된 지식이 복원 불가능하게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언어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공동체 소속감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한 언어가 교육 체계 안에서 가르쳐지고,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사용되며, 법과 행정 언어로 존중받을 때, 그 공동체는 스스로를 존엄한 문화의 주체로 인식하게 됩니다. 반대로 언어가 억압받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 공동체는 점점 문화적 소외와 위축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소멸 위기 언어 보호는 단지 언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문화 다양성을 지키며, 인류의 지적 유산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언어는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담고 있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3. 소멸 위기 언어를 지키기 위한 글로벌 노력들
세계 여러 나라와 기관은 소멸 위기 언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유네스코의 ‘소멸 위기 언어 지도’
유네스코는 온라인으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Interactive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를 운영 중이며, 해당 지도에는 현재 위기에 처한 언어들의 분포와 상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 디지털 보존: AI와 언어 데이터베이스
Google, Microsoft, Mozilla 같은 기업들은 AI 기술을 활용하여 위기 언어의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특히 Google의 Endangered Languages Project는 전 세계 원어민과 연구자들이 협업하여 발음을 기록하고, 언어 지도를 구축하며, 디지털 사전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 지역 커뮤니티의 자발적 복원 노력
하와이 원주민 언어인 **하와이어(Hawaiian)**는 20세기 중반 거의 사라질 뻔했지만, 지역 사회의 노력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하와이어로 교육하는 ‘이몰라(ʻAha Pūnana Leo)’ 운동이 성공을 거두며 부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4. 한국의 언어 다양성: 방언과 소수 언어의 위기
한국 또한 단일 언어 국가로 보이지만, 제주어, 방언들, 그리고 재외동포의 언어적 유산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 제주어는 유네스코에서 ‘소멸 위기 언어’로 공식 등재했으며, 고령층 일부만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상태입니다.
- 방언 간의 특징이 약화되며 ‘표준어 일원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는 언어적 다양성 감소로 이어집니다.
- 고려인, 조선족 등 해외 한민족 공동체에서는 자국어 우세 환경 속에서 한글 교육이 어려워지며, 언어 단절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 내 언어 다양성 보존 정책 또한 중요합니다. 소멸 위기 언어는 단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까이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5. 말하지 못하는 문명, 기록되지 않은 문화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기록되지 않은 인류 문명이 침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말(언어)**을 통해 지식, 역사, 종교, 과학, 전통, 감정을 전달해왔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문자보다 먼저 존재한 최초의 기록 도구이며, 기억을 이어가는 구전의 바탕이었습니다.
고대 문명의 비밀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로제타 스톤이나 마야 상형문자의 해독처럼, 죽은 문자들이 복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소멸 위기 언어들을 복원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현대 문명이 지속 가능하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이자 책임입니다.
현재 AI, 음성 인식, 디지털 보존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사라져 가는 언어들을 문자화하고, 녹음하고, 사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언어 사용자 공동체의 참여와 의지, 국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세계 시민의 문화적 감수성이 함께 작동해야 비로소 언어가 다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블로그 글을 읽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 앞 세대가 언어를 남기고, 기록하고, 보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의 언어 유산을 지키는 일은 단지 전문가의 몫이 아닌, 모든 언어 사용자들의 시대적 소명입니다. 잊혀지는 언어들은 단순한 단어들의 집합이 아니라, 다시 말할 기회를 기다리는 하나의 문명입니다.